괴담) 비 오는 날의 흉가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는 대략 20년 전 제가 아는 형님께서 대학생 시절에 친구랑 경험한 일입니다.
형님과 친구 분은 거나하게 취하셨습니다. 세 분은 만취하여 가누지 못하는 몸을 하고 부산의 사직동 지나 쇠미산을 지나는 산길을 넘어갔습니다. 장마철이라 그런지 갑자기 장대비 같은 엄청난 폭우가 하늘에서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처음 세 분이었으나 알게 모르게 한 분은 중간에서 새고 남은 두 분은 끝도 없이 내리는 폭우를 피해 산길을 무작정 달렸습니다.
그런데 이거 도저히 달려가서 피할 비가 아니었습니다. 어디서부터 길을 잘못든 것인지 산길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주변은 전혀 모르는 생소한 곳이었습니다.
보통 산길을 지나가면 집까지의 거리는 10분 정도인데 이건 30분 이상은 헤맨 느낌이었습니다.. 이거 길 찾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체온이 식기 전에 어디 가서 비라도 피해야겠다고 생각되었습니다. 두 분은 인근을 헤매다 멀리 불이 켜진 단층집을 발견하고 급한 대로 찾아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회상하는 형님의 말로 첫 느낌부터 상당히 섬뜩했다고 합니다. 낡은 슬레이브 집인데 녹슨 대문엔 가시덤불이 가득했습니다.
도저히 사람이 사는 집이 아닌데 이상하게도 안에는 희미하게 불빛이 새어 나왔습니다. 마당을 지나 현관을 찾는데 현광문은 삐꺼덕대는 나무문으로 유리는 깨어진데다 열려서 바람에 삐걱대며 움직였습니다.
안으로 들어가니 인기척은 없고 구형 낡은 갓이 있는 백열등이 홀로 켜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집 안에는 벽이고 문이고 전부 피로 칠갑되어 있었으며 바닥에는 관뚜껑 같은 판자가 피범벅이 되어 있었습니다.
조용한 가운데 소곤소곤 대는 여자의 말소리가 안방에서 계속 들려왔습니다. 형님과 친구 분은 악천후에 비를 피하기 위해 주인을 한참동안 소리쳐 불렀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대답 없이 소곤거리는 말소리만 들려오자 친구 분이 화가 나서 방문을 열어젖혔는데 아무도 없었습니다.
누군가 살았는지 벽에 옷이랑 가재도구는 그대로 있는데 한 눈에 보아도 먼지가 뽀얀 것이 사람이 사는 집이 아니었다. 그런데 백열등이 왜 켜져있을까요? 게다가 금방까지 안방에서 들리던 목소리는…….
"아아아아악!"
갑자기 다른 방에서 여자가 고문당하는 비명소리가 모골송연하게 방가득 울려 퍼졌습니다. 친구 분이 담력이 센지 용기 내어 방문을 다 열어도 피칠갑된 벽만 있고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다 죽여 버릴 거야!"
알칼지게 외치는 여자의 원독서린 목소리가 들려오고 백열등이 갑자기 나갔습니다. 모골이 송연해진 두 분은 정신없이 그 집을 벗어나와 다람쥐 쳇바퀴 구르듯이 비가 쏟아져 토사가 흘러내리는 비탈길을 마구 굴러서 토사 범벅이 되어 도망쳤습니다.
형님은 아직도 그 집만 생각하면 소름이 돋는 다고 하십니다. 다시 찾아볼 엄두도 안 내고 흉가를 찾아다니는 제가 물어도 어딘지 가르쳐 주지 않으십니다.
[투고] 법왕님
괴담) 공포영화를 좋아하는 여자친구
전 남자친구와 겪은 일입니다.
약 3년 전, 유학을 갔던 저는 남자친구와 같은 랭귀지 스쿨을 다녔습니다.
수업이 끝나면 자취하는 남자친구 집에서 노는 일이 종종 있었는데, 당시 '정말로 있었던 무서운 이야기' 라는 공포 드라마를 자주 봤었습니다.
남자친구는 그 드라마를 보는 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기에 제가 열심히 보는 동안에는 언제나 뒤돌아 누워서 자곤 했었습니다.
그 날은 비도 오지 않는데 우중충하고 스산했던 날이었습니다.
평소처럼 남자친구 집에 오자마자 노트북을 켜고 그 드라마를 보는데, 그날따라 남자친구가 잠이 안 온다고 해서 저는 억지로 남자친구를 붙잡고 같이 드라마를 보게 했습니다.
그 날 봤던 내용이 학교에 두고 온 물건을 찾으러 온 고등학생 커플이 복도에서 하반신만 돌아다니는 귀신을 보고 일어섰을 때 천장에 나머지 상반신이 붙어서 그들을 보고 있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다음날, 남자친구가 결석을 했습니다.
방과 후 남자친구 집에 갔을 때, 그때까지도 자고 있는 남자친구를 깨웠더니 새벽녘부터 가위에 눌려 제대로 자지 못했다는 변명을 늘어놓았습니다.
남자친구는 공포물을 보면 똑같은 귀신에게 가위에 눌리기 때문에 공포물을 보는 것을 늘 피했다고 합니다. (불행하게도, 저와 만나면서 공포물을 하도 많이 본 탓에 가위에 눌린 적이 굉장히 많았다고 합니다.)
그 날 밤도 어김없이 가위에 눌렸는데, 옆으로 돌아누워 있던 남자친구의 시야에 빨간 하이힐을 신은 발목이 들어왔다고 합니다. 겁이 난 남자친구는 있는 힘껏 몸을 돌렸는데, 그 날 본 드라마처럼 천장에 허리만 붙어있는 귀신이 남자친구를 향해 손을 휘저으며 남자친구를 잡으려고 애쓰고 있었답니다.
남자친구의 그런 체질을 알고 굉장히 미안했지만, 그 뒤에도 종종 공포영화를 보곤 했고, 남자친구도 별 다른 문제가 없는 듯 했습니다.
그리고 몇 달 후, 남자친구가 귀국하면서 저희는 헤어지게 되었습니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뒤, 저희와 친하게 지내던 쌍둥이 오빠들과 만나 술을 마시다가 우연히 전 남자친구에 대한 얘기가 나왔습니다.
그 중 한 명이 제게 말했습니다.
"이거 말해도 되는지 모르겠는데……. 헤어졌으니까 그냥 말해줘도 되겠지?"
"응, 무슨 일인데?"
"K(전 남자친구 이름)가 가위에 눌렸는데 천장에 허리가 딱 붙은 여자 귀신이 자기를 계속 잡으려고 하더래." "나도 그거 알아. 우리가 봤던 드라마에 나왔었어."
"한참을 손을 휘적휘적 거리다가 그 귀신 손이 K 머리끝에 닿았는데, 그 귀신이 입이 찢어지도록 웃더래. 그때 그 여자 얼굴을 보는데……."
오빠가 말끝을 흐리자 옆에 있던 다른 오빠가 한숨을 쉬면서 말을 이었습니다.
"……걔도 힘들었을 거야. 가위 눌릴 때마다 나타나는 귀신 얼굴이 자기 여자 친구 얼굴이었으니까."
어느 날부터 가위에 눌리면 제 얼굴을 한 귀신에게 계속 시달렸다고 합니다.
헤어지는 날까지 계속…….
우리가 헤어진 이유가 그것이 아니기를 바랄 뿐입니다.
[투고] 맘마밀님
(5ch 괴담) 뒷산에 버섯을 따러 갔었다.
우리 동네는 시골이라, 철이 되면 뒷산에 버섯을 따러 간다.
초등학생 무렵에는, 버섯이 많이 나는 곳을 할아버지에게 배우며 둘이 함께 다녔었다.
하지만 중학생이 되고서는 혼자 다니거나 친구랑 다니거나 했다.
그날은 일요일이라, 친구랑 둘이서 같이 뒷산을 찾았다.
순조롭게 이것저것 딴 뒤, 슬슬 돌아갈까 싶던 때.
친구가 갑자기 소리를 지르더니,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나뭇가지에 다리가 걸려 넘어지는 일이 종종 있다보니, 그때도 그런 줄 알았다.
하지만 친구는 위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도 따라서 위를 봤다.
목을 맨 사람이 있었다.
그것도 둘이나.
너무 놀라면 소리조차 지르지 못한다는 걸 그때 느꼈다.
나는 뒷걸음질치며,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패닉에 빠져 있었다.
하지만 한동안 보고 있자니, 그게 진짜 사람이 아니라, 마네킹이라는 걸 깨달았다.
[장난치고는 너무 심하네!] 하고 화를 내며, 친구와 산을 내려왔다.
나와 친구는 우리 집에 가서, 아버지에게 우리가 본 것을 전했다.
곧 접사다리와 손도끼, 전지가위를 가지고, 셋이서 다시 마네킹을 치우러 갔다.
아버지가 접사다리에 오르고, 나와 친구는 접사다리를 붙잡고 지탱했다.
아버지는 솜씨 좋게 마네킹의 목에 감긴 로프를 잘라서 아래로 떨어트렸다.
이런 건 어서 버려버리자고, 셋이서 우리집 헛간으로 옮겨왔다.
그대로 버렸다가는 또 누가 오해할지도 모르니까, 가능한 한 사람 같이 안 보이도록, 산산조각나게 부숴버릴 생각이었다.
마네킹이 입은 허름한 옷을 벗겼다.
마네킹의 배에는 빨간 페인트로 글씨가 써 있었다.
"이 마네킹을 내린 사람은 죽는다"
그걸 보고,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얼어붙었다.
하지만 아버지가 또 하나, 여자 원피스를 입혀놓은 마네킹의 옷을 벗겼다.
역시나 그 마네킹의 배에도 글씨가 써 있었다.
"이 마네킹을 내린 사람이, 가장 사랑하는 이가 죽는다"
아버지는 굳어버린 나와 친구를 달래며, [가서 쥬스라도 좀 사오거라.] 하며 헛간에서 내보내셨다.
그리고 그 사이, 혼자 마네킹 둘을 산산조각 낸 뒤 버려버리셨다.
그 이후, 나와 아버지, 친구에게 그 사건은 입에 올리면 안되는 것이 되었다.
말을 꺼내기조차 꺼름칙해서 여기 글로 남기는 것이지만, "가장 사랑하는 이가 죽는다" 라고 써 있는 걸 보자 너무나도 괴로웠었다.
출처: https://vkepitaph.tistory.com/1403?category=348476 [괴담의 중심 - VK's Epitaph]